[박근종 칼럼] 12년째 3만 달러 박스권에 갇힌 국민소득, 구조 개혁 없는 성장은 신기루일 뿐

편집국 / 기사승인 : 2026-03-14 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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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12년째 3만 달러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10일 발표한 ‘2025년 4/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년 전 5,012만 원 보다 4.6% 증가한 5,241만 6,000원이다. 미국 달러화 기준으로는 1년 전 3만 6,745달러보다 0.3% 늘어난 3만 6,855달러에 그쳤다. ‘선진국 관문’이라는 3만 달러에 2014년 처음 진입한 후 10년이 훌쩍 넘도록 4만 달러 벽을 넘지 못하고 무려 12년째 ‘3만 달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거듭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보다 먼저 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한 영국·프랑스·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4만 달러로 오르는 데 평균 4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한국은 무려 12년째 ‘3만 달러 덫에’ 갇혀 있다. 더구나 한국의 1인당 GNI는 2023년과 2024년 연속 일본·대만을 앞섰다가 지난해 두 나라 모두에 역전을 허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GNI는 한 국가의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총인구로 나눈 값을 말한다. 원화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GNI가 4.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달러로 환산해 계산하면 성장률은 0.3%로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원화 약세에 따른 환율 상승효과로 풀이된다. 우리 경제가 국내에서 아무리 부가가치를 창출해도,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국제적 지표인 달러화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환율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의 경제 근육이 제대로 커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1.0%에 머물렀다. 반면 대만은 지난해 경제성장률 8.7%를 기록하며 GNI 4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엔저 현상으로 고전하던 일본도 지난해 1.2% 성장하며 GNI는 3만 8,000달러를 돌파했고 한국을 넘어섰다. 대만은 2022년 한국을 20년 만에 추월한 뒤 파죽지세로 ‘퀀텀 점프(Quantum Jump)’를 이어가고 있고, 일본도 성장률이 한국을 추월한 건 27년 만이다.

이처럼 한국의 성장 시계가 멈추면서 12년째 3만 달러 박스권에 갇혔는데 숫자보다 뼈아픈 것은 역전의 기록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Super Cycle │ 장기적인 상승 추세)’을 등에 업은 대만(4만 585달러)은 물론, 장기 침체를 겪던 일본(3만 8,000달러)에마저 재 역전을 당했다. 전년 대비 4.3%(달러당 1,422원) 떨어진 원화 가치 하락이 직격탄으로 작용했다지만 더 근본 원인은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 고갈에 있다.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제성장률(1.0%)이 일본(1.2%)에 뒤처질 만큼 허약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내핍(耐乏)과 고통 분담의 구조 개혁뿐임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구조 개혁 없는 성장은 결국 실체 없는 ‘신기루(Mirage)’일 뿐이다.

특히 대만은 ‘기업 친화’ 노선으로 4년 만에 3만 달러대 탈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8.6%의 경이로운 성장에 이어 올해도 7.7%의 고성장을 예고해, 한국의 올해 2% 성장 전망과의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대만과 달리 반도체 외에도 다양한 제조업 기반이 튼실하다.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자동차, 조선, 방산은 물론 AI, 배터리, 바이오 등 미래 산업을 좌우할 업종이 즐비하다. 정부는 기업친화정책으로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한편,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기업은 노동생산성을 강화하고, 기술경쟁력을 키운다면 현재 한발 앞선 대만을 이른 시일 이내에 추월할 수 있다. 여기에다 최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원화 가치 제고까지 이뤄진다면 1인당 GNI 4만 달러 시대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은 분명하다. 결국 핵심 관건은 새로운 성장산업 발굴과 기술경쟁력이 국민소득을 끌어올리는 동인(動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잠재성장률 3%(현재 1.8%로 추정)’를 공언하고, 한국은행도 “환율이 중립적이면 2027년 4만 달러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며 낙관론을 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이미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촉발(觸發)된 중동 전쟁 여파로 환율은 1,500원 선이 위협받고 있다. 무엇보다 성장의 엔진인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한국의 달러 기준 1인당 GNI는 2014년 처음 3만 달러에 진입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21년에는 3만 8,000달러에 근접하며 4만 달러 시대 진입을 눈앞에 두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원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3만 5,000달러대로 밀렸고 이후 2023년 3만 6,000달러대를 회복했지만, 증가 속도는 크게 둔화했다. 2024년 증가율은 1.5%, 지난해는 0.3%에 그치며 3년째 3만 6,000달러 수준에서 정체된 상태다.

노동생산성을 올리려면 기술 혁신과 연구개발(R&D) 투자가 급선무(急先務)다. 다시 성장률을 높이고 소득을 올리려면 한계에 달한 산업은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고 미래 신성장 동력 중심으로 혁신 경제 틀을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 앞으로 국가 명운(命運)은 인공지능(AI)과 저전력 반도체, 피지컬(Physical) AI와 로봇, 배터리와 에너지 산업의 기술력에 좌우되는 만큼 이 분야의 생태계와 친기업 환경 조성에 집중하는 것이 정석이자 첩경이다. 저출산 고령화가 저성장 고착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민적 노력을 가일층(加一層) 경주(傾注)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이란 전쟁이란 위기를 오히려 경제 도약의 기회로 활용하는 게 정부의 책무이자 일궈내야 할 실력일 수 있다. 결국은 생산성이 문제인데 특히 서비스업 생산성이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다. 그 바람에 제조업과 생산성 격차가 확대돼 전체 경제의 효율성이 낮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잠재성장률(2%) 회복을 기대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업의 투자 활동을 위축시키는 각종 규제와 치솟는 인건비, 산업용 전기료 부담 등 제반 조건도 생산성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장애물 뒤엔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의 집단이기주의도 도사리고 있다. 구조 개혁은 어렵고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한 길이다. 노동과 세제 등 구조 개혁이 필요한 부분에 집중적인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 기업 친화적인 시장 환경 조성이 최우선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부의 혁신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이재명 정부 임기 중 1인당 GNI ‘4만 달러 시대’는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수출 주도형인 경제가 장기간 새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채 기존 산업에 안주해 온 결과다.

무엇보다도 특정 분야에 편중된 성장 구조를 서둘러 바꾸지 못하면 미래 성장 산업과 신기술 기업을 키워 낼 수 없다. 과감한 규제 혁파와 노동 구조 개혁으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국민소득 3만 달러 탈출은 요원(遼遠)하다. 더 늦기 전에 정책 전환과 경제 체질 개선으로 기업 투자를 북돋워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넘어 5만 달러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3·3·5비전(인공지능 3대 강국, 잠재성장률 3% 달성, G5 진입)’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잠재성장률 3%는 한국이 소득 3만 달러 늪에 계속 갇힐지 탈출할지를 가르는 기준선이다. 약속했던 코스피 5,000 시대를 열었지만, 난이도 측면에서나 국가 경제와 민생 측면에서나 파급효과 측면에서나 잠재성장률 3% 달성 쪽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영예로운 훈장임을 각별 유념하고 실행과 실적으로 답해야만 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잠재성장률을 3%대로 끌어올리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3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고 “대한민국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하락하는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는 것”이라며 “규제와 금융, 공공, 연금, 교육과 노동 등 6대 핵심 분야의 구조 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가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대한 과감한 구조 개혁을 통해 내년(2026년)을 국가 잠재성장률 반등의 원년으로 삼겠다.”라고도 밝혔다.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넘어 5만 달러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진통이 있더라도 구조 개혁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결단코 호락호락하거나 쉬운 길은 아니다. 일부 지지층의 거센 반발도 넘어서야 한다. 이전 정부들처럼 구조 개혁을 말로만 하다가 끝나는 일은 없어야만 한다. 흐지부지 유야무야(有耶無耶)나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선 결단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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